쓸까 말까 고민했다. 아마 이민 햇수를 세는 회고는 이게 마지막일 것 같다. 이민 초기엔 뭐든 새로 겪는 것마다 기록하곤 했는데 어느덧 그런 습관은 잃어버렸다. 마치 오래 산 부부가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것과 비슷할까. 이젠 지금의 일상이 그냥 당연해져 버려 예전처럼 자축할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이전 기념일 땐 어떤 기분이었나 싶어 만 4년째에 쓴 회고글을 보니 아예 날짜까지 세고, 사진들도 따로 묶어 정리하고 있다. 나도 이런 열정이 있었구나 싶다. 아, 젊음이여!
한국에서 독립 기술 이민으로 영주권을 받았던 당시 나는 서른 두살. 결혼후 이제 고작 갓난 아이를 뒀던, 책임감보다는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한 욕심이 더 큰 철없는 젊은 가장이었다. 그 후로도 한참이나, 아니 지금도 철없긴 마찬가지인거 같은데 나이만 먹었다.
가만… 내가 왜 이민을 왔더라? 떠올려 본다. 이민 오기 전날 밤은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기억을 되살리려 옛날 글을 읽어본다.
제 나이도 어느새 30대 중반이군요. 결혼도 하고, 애도 갖고, 하는 업무도 익숙해지고, 이제 슬슬 등 따숩고 배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 새 무섭게 찐 뱃살이 이를 증명하는 듯 하네요. 그러면서 고민하게 됐습니다. 언젠가부터 반복되는 생활.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다니는 회사. 눈 감으면 훤히 보이는 나의 10년 후.
저의 필명 ‘산티아고’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가장 처음 읽은 영서이자, 오늘의 결정이 있게 한 책입니다. 책의 양치기 소년처럼, 매일 차가운 들녘 이슬을 맞으며 자더라도 내가 꿈꾸는 일상 속에서 살고 싶다고 마음 먹은게 벌써 7년 전입니다.
오글거려 닭이 되는 줄 알았다. 지울까? ㅠㅠ 왠지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 거린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럽다. 무모했던 그 열정이. 고작 그런 이유로 도전을 서슴지 않았던 그 때의 내가.
10년 전의 나는 뻔한 일상과 눈앞에 그려지는 10년후가 싫어 한국을 떠났다.
10년후의 나는 어느덧…
더이상 모험을 꿈꾸지 않는 갱년기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그런 치기 어린 도전은 혼자 몸일 때나 하는 거라고, 이젠 부양 가족도 많고, 어느덧 은퇴 후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런게 현실인가 싶다. 삶은 언제나 내 나이에 맞는 또다른 시련을 준비한다. 그땐 떠나는게 도전이었고, 지금은 버티는 게 도전이다.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다짐해 본다. 이 평온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여력있는 젊은 날에 그런 도전을 해줬던 10년전의 나에게 감사하자고. 그리고 그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어준 모든 인연들과, 시간에 감사하자고.
출국은 전날했지만 입국은 4월 16일에 했다. 5년후 같은 날, 세월호가 팽목항에 가라 앉았다. 삶의 여러 시련을 겪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아이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매년 같은 날이 되면 자식을 가슴에 묻은 슬픔을 되새겨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걸 생각하면 몸 건강히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